세상에 나쁜 냄새는 없다?

2006년 1월 5일 | 녹색생활

후각은 예민한 만큼이나 너그러운 감각이다. 아무리 지독하다고 호들갑을 떨다가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맡을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는 냄새만도 1만 가지가 넘는다. 세상에 나쁜 냄새는 없다? 글/김기돈 생활의 곳곳에, 기억의 구석구석에 냄새는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새로운 삶을 마주하게 한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든 냄새들이 하나하나 기억으로 남거나 하루하루를 살아오게 한 높낮이가 있는 운율 같은 것이다. 숨을 들이쉬며 내쉬며 호흡은 냄새로 기억되는 것들을 남겨주고, 냄새의 기억들이 삶의 다채로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냄새를 마주하는 것은 이렇듯 자연스러운데, 얼마 전부터 우리가 사는 자리에 상품화된 냄새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가지가지 만들어진 냄새들이 생활의 자리를 채우고, 다양한 냄새 상품들이 생활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주렁주렁 많은 냄새와 관련된 물건들이 생활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방향과 탈취와 관련된 것이다. 소위 ‘좋은 냄새’로 ‘나쁜 냄새’를 덮어버리는 방향제는 향수와 함께 자주 사용된다. ‘나쁜 냄새’를 없앤다는 탈취제는 냄새입자를 분해하고 증발시켜서 냄새를 없앤다면서 색색의 옷을 입고 방안, 옷장 속 깊숙이까지 들어와 앉았다. 냄새로 가득한 생활공간 들여다보기 87명에게 냄새에 대한 몇가지 조사를 했다. ‘냄새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냄새와 관련된 어떤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지, 냄새상품을 사용하게 된 동기, 정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냄새, 다시 맡고 싶은 그리운 냄새, 냄새에 대한 생각들을 물었다. 응답자 들은 20대가 30퍼센트, 30대가 56퍼센트, 40~50대가 14퍼센트이다. 응답자 가운데 주부가 70퍼센트이고, 미혼 남녀 직장인이 30퍼센트이다. * 생활공간에 있는 냄새와 관련된 물건은? – 화장실(세탁실)/ 자연향 비누, 샴프, 목욕용품, 방향제, 섬유유연제, 세탁세제 / 3가지 사용(20 명), 4가지 사용(12명), 5가지 이상 사용(14명) – 몸에 직접 사용/ 향수류(35명), 데오도란트(20명), 입냄새제거(14명), 발에 뿌리는 탈취제(3명) – 안방, 장롱/ 옷장 방향제 (22명), 옷장 탈취제(26명), 분무식 탈취제(14명), 향초(14명), 태우는 향 (13명), 방향제 소품(7명), 탈취제 넣은 이불(5명), 주머니 방향제(4명), 말린 꽃 방향제(3명), 탈취 기능 속옷(2명), 냄새 없애는 배게(1명) – 주방/ 자연향 세제(30명), 싱크탈취(12명), 냉장고 탈취제(2명), 냄새상품 사용자 77퍼센트(67명)가 1인당 평균 6가지를 사용하고, 사용자 67명이 전체 355가지 냄새상품을 쓰고 있다. 주로 20대 131가지, 30대 163가지, 40~50대 61가지 냄새상품을 사용하고 있다. 냄새상품을 쓰는 경향은 냄새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냄새가 특히 많이 날 수 있는 곳이나, 생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냄새를 미리 막는 방법을 찾는다. 냄새관련 상품이 다양해지고 세분화 되어 있어서 비슷한 상품을 여러개 사도록 유도한다. 몸에 직접 사용하는 상품은 젊은층에서, 생활에 직접 연결되는 상품들은 30~40대 주부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에서 나타는 불쾌한 냄새의 근원과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지 모른다. 분야를 나누어서 환기, 통풍을 기본으로 물건 수납의 방법을 바꾸는 것. 냄새로 냄새를 감추는 것이 해결점이 아닌 까닭이다. * 방향제, 탈취제를 쓰는 까닭 – 사용동기/ 불쾌한 냄새제거(54명), 자연향이 생활공간에 늘 나게 하려고(11명), 상품방송을 보고 선택(3명), 주변인에게 사용한 경험을 듣고 사용(2명) – 냄새 상품 얼마나 자주사용 하는지/ 가끔 불쾌한 냄새가 날 때(43명), 수시로 습관적으로 사용(17 명), 만약을 위해 준비(6명), 아침.저녁 한 두번(6명) – 생활에 미친 영향/ 사용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38명), 건강에 이로운지 미심쩍다.(24명), 인공 냄새에 너무 길들여지고 있다(11명), 생활공간이 상쾌해진다(7명), 인공의 냄새들이 냄새에 대한 편 견을 갖게 한다(5명) – 요즘 냄새에 관심이 높아진 까닭은?/ 매체의 영향(42명), 관계 속에서 예의를 위해 사용(28명), 생 활수준이 높아져서(14명),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신뢰가 생겼다(4명) 대체로 불쾌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용(62퍼센트)하고 있다. 더러는 자연향을 생활공간에서 항시 맡을 수 있도록 사용(13퍼센트)하기도 한다. 사용빈도수를 보면 상당수는 가끔 필요에 따라서 사용(50퍼센트)하고, 젊은층에서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20퍼센트)하고 있다. 생활에서 필수품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고, 인공냄새에 길들여지고, 편견을 갖게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게다가 인공냄새에 오랫동안 노출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건강 문제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냄새에 대한 매체들의 과장광고와 좋은 냄새에 특별한 환상이 인공냄새를 사용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 이 냄새 너무 좋아/ 꽃향기(27명), 허브향(18명), 숲·나무, 풀냄새(14명), 과일냄새(6명), 음식냄새 (6명), 커피향(6명), 샴프 냄새(3명), 비오는 날 흙냄새(5명), 향수(3명), 마른빨래냄새(3명), 맑은공 기 냄새(2명), 아기젖 냄새(2명), 모기향(2), 꿀 냄새, 이불냄새, 인도향, 비오는 날 땀냄새, 이불냄 새, 레몬향, 들기름냄새, 아기냄새, 이슬냄새, 누룽지 끓이는 냄새, 사랑하는 사람냄새, 소독차 냄 새, 인삼향(각 1명) 좋아하는 냄새는 누구에게나 비슷한 흐름이 있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얻는 냄새, 숲 식물이나 꽃, 과일 같은 냄새에 편안함을 느끼고, 냄새 상품도 이 부분을 공략한다. ‘숲에서 온, 숲을 느낄수 있는’ 것을 강조한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인공의 물질로 대체할 수는 없다. * 이 냄새 정말 싫어/ 담배냄새(33명), 입냄새(25명), 땀내(22명), 하수구냄새(6명), 짙은향수(6명), 곰팡이냄새(6명), 음식물냄새(4명), 몸냄새(4명), 매연(4명), 인공방향제(3명), 쓰레기냄새(3명), 화 장실냄새(3명), 술냄새(3명), 비린내(2명), 고기냄새(2명), 머리냄새, 수돗물냄새, 새개구 냄새, 발 냄새, 짙은향 비누, 짙은 화장품냄새, 플라스틱냄새, 쉰내, 에어컨냄새, 물비린내, 히터냄새, 구두약 냄새, 페인트냄새, 음식 썩은내, 양념냄새(각 1명) 싫은 냄새는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감각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냄새는 중립에 서 있다. 좋은 냄새도 언제나 그렇지 않고, ‘나쁘다’고 규정한 것들이 늘 그렇지 않다. 물질이 부패했거나 원래 성질을 잃었을 때 냄새도 달라진다.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물질이 썩는 과정에서 나오는 냄새는 ‘악취’로 여긴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발효 식품을 다양하게 개발해온 우리 민족은 냄새를 다룰 수 있었다. 삭히거나 발효 숙성된 것을 먹기도 하고, 퇴비 거름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냄새에 대한 ‘좋고 나쁜 판단’을 넘어서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 주거방식의 변화가 냄새를 다루는 다양한 기술을 잃게한 것은 아닐까. * 다시 맡고 싶은 그리운 냄새/ 풀냄새(7명), 엄마냄새(6명), 흙냄새(5명), 할머니냄새(4명), 아궁이 짚 타는 냄새(4명), 쑥 모깃불냄새(2명), 논두렁 타는 냄새(2명), 아까시꽃 냄새(2명), 장작불냄새(2 명), 청국장, 거름냄새, 쥐불놀이, 군고구마냄새, 군밤, 구운감자 냄새, 비 오는 냄새, 사과냄새, 소 독차 냄새, 조카 수유할 때 젖 냄새, 누룽지냄새, 잉크냄새, 냉갈내음, 깨 볶는 냄새, 가마솥 밥 짓 는 냄새, 뻥튀기냄새, 오래된 책 냄새, 솔가지 타는 냄새, 바다소금 냄새, 산 정상 공기냄새(각 1명) 냄새는 기억하게 한다. 기억을 남기고 특별한 사건이나 시간과 연결된다. 어떠한 냄새가 어떠한 삶을 불러내고, 관계 짓게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냄새의 기억들은 하나의 냄새가 어떻게 삶이 되었고, 일상을 이어가게 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자연스러운 냄새, 자연과 마주했던 기억에 담겨있는 냄새 지금을 들여다보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제 뿌리를 기억한다. 냄새에 대한 기억은 바로 그 근원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 냄새에 대한 통념, 다시 생각하기 – 좋은 냄새 싫은 냄새/ 자연향은 좋은 냄새이다(46명), 인종별로 좋고 싫은 냄새가 있다(36명), 사 람 손길타지 않은 냄새가 좋다(34명), 기분 좋아지는 냄새는 다 좋다(23명), 원래 좋은 냄새나 나 쁜 냄새는 없다(10명), – 자연냄새, 인공냄새/ 인공냄새는 싫다(44명), 가공된 냄새들이 생활 속에 증가했다(41명), 냄새상 품이 도움되는 경우가 있다(40명), 사람사는 곳 냄새는 자연스럽다(36명), 냄새상품은 크게 필요치 않다(28명), 몸냄새는 불쾌하다(13명), 아무 냄새도 안나는 것이 좋다(9명), 방향제 사용하면 기분 이 좋다(9명), 냄새상품은 더 다양해져야 한다(8명) – 냄새를 대하는 태도/ 생활하면서 나는 냄새는 자연스럽다(39명), 공공장소에서 냄새 없애는 게 예 의이다(31명), 냄새는 사물이나 사람을 평가하는데 영향을 준다(24명), 낯선 냄새는 우선 경계한다 (24명), 아무냄새 나지 않아야 안심한다(18명), 냄새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7명), 아무 냄새도 나 지 않으면 불안하다(7명) – 냄새에 대한 생각/ 냄새는 좋은 기억을 불러오거나 특별한 기억을 새겨준다(60명), 여자가 더 냄새 에 예민하다(37명),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일은 안타깝다(25명), 냄새에 대해 너그러워져야 한다(15 명), 나는 냄새에 너그러운 사람이다(15명), 후각은 어릴 때 더 예민하다(12명), 냄새에 남자가 더 예민하다(10명), 냄새 맡는 감각은 예민하지 않아도 된다(10명) 후각은 예민한 만큼이나 너그러운 감각이다. 아무리 지독하다고 호들갑을 떨다가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맡을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는 냄새만도 1만 가지가 넘는다. 다양한 냄새들이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펼쳐 흘러들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냄새를 두 가지로 나눈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 생활공간에서 그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고 불분명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냄새에 대한 느낌이나 선입관이 우선해서 작용한다. 사람마다 후각이 얼마나 예민한지에 따라, 냄새에 대한 선호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되는 까닭이다. 배가 아주 고픈 상태에서 음식냄새는 매력적이지만, 포만감을 느끼게 된 상태에서는 그 좋던 냄새도 역겹게 느껴진다. 또한 냄새의 농도에 따라서 같은 물질도 다르게 느껴진다. 숲에서 느끼는 오존은 신선한 느낌과 상태하게 해주지만, 오존의 양이 많아지면 호흡기를 자극하는 독성 있는 물질이 된다. 똥에서 나는 냄새도 사람 몸 속 장안에 있는 가스가 배출되는 ‘악취’라고 말하지만, 그 농도가 낮을 때는 ‘자스민 향기’를 낸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악취’와 ‘향수’는 사실 한 뿌리에 있다는 말이다. 냄새는 ‘나쁘다, 좋다’로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나쁜 냄새는 없다 생활은 냄새로 가득 찬 공간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숨을 쉬는 동안 계속 냄새를 맡는다. 코를 막거나 숨을 참으면 그 순간만을 모면할 뿐 냄새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냄새를 다루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냄새에 냄새를 더해 좋은 느낌을 만들거나, 때로는 냄새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렇게 ‘냄새 상품’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사는 곳곳, 생활 구석구석에 뿌려진다.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구별에 살고 있는데, 이들이 냄새에 끌리는 정도를 보면 그 흐름이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반응도 그러하다. 이는 매우 심리적인 것이다. 서로의 냄새에 대해서 특별하게 나쁘거나 불쾌한 것이 아니라 낯설음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은 냄새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에는 끌리지만 익숙하지 않은 냄새는 일단 경계를 한다. 세상에 ‘나쁜 냄새’는 없다. ‘익숙한 냄새’와 ‘낯선 냄새’가 있을 뿐이다. 낯선 냄새에 대한 관습과 습관에 따른 경계, 단절이 냄새를 경직된 습관으로 만들어 버린다. 낯선 것을 배척하고 거기에 ‘나쁜’이라는 주관에 따른 판단을 담아 차별하는 것은 냄새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냄새에 대한 감각도 달라지고 냄새에 대한 생각도 다르게 나타난다. 냄새를 받아들이고 냄새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너그러이 냄새와 마주한다면 냄새를 그저 자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공의 화학향기에 의존하거나 탈취와 방향에 매이지 않고, 문을 열고 세상의 냄새와 마주하는 것을 어떨까. *김기돈 님은 녹색연합 부설기구인 ‘작은것이아름답다’ 편집장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