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지역에서 길을 묻다.

2009년 11월 20일 | bbs_자유게시판

지역운동을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운동이 공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조합주의’에 빠져있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노동운동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인식도 깔려있다. (이런 기조는 금속의 정책국장 조건준-엔엘의 한 분파-이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에서 문제의식을 드러냈고, 임성규집행부로 대표되는 중앙파와 진보신당의 주류가 그렇다.) 조합주의란 좁게 말하면 자기 공장의 이해에만 매몰된 경우이다. 다른 사업장에서 지역에서 어떤 문제가 벌어지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의 고용과 노동조건만 좋아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극히 이기적인 사고이다. 물론 이런 사고는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낸 분열과 경쟁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최근 일부 노동운동에서 지역운동을 말하는 것은 형식적인 측면이 있다. 노동의제가 아닌 비노동의제(긍정적으로는 사회적 의제)를 주장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계급성을 상실하고 운동의 최종적인 목표를 상실하고 있다. 글쎄..노동자들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주장하면 그것이 사회를 변혁시키는 투쟁이되는걸까? 그것만해도 어딘데? 라며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을 회피하면 ‘도로나무아미타불’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임금인상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임금제도 자체를 철폐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자본의 손아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데..그래서 매일 임금인상투쟁만 할 수밖에 없고.. 지역운동은 그래서 그 셩격을 조금 달리 보아야 한다. 지역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면서 더불어 우리의 삶을 변하시켜야하는 최소의 단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연대가 실현되어 반자본주의의 핵심 진지가 될 수 있는 단위이기도 하다. 노동운동은 어떻게 지역운동을 건설할 것인가? 그것은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대중의 이해를 전면에 걸고 지역에서부터 연대를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 단위의 투쟁이 고립되지 않도록 연대하며 노동자계급의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게 말하면 지역의 작은 투쟁이라도 함께 논의하고 함께 책임지는 투쟁을 만들어가면서 노동자의 단단한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투쟁사와 기자회견문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환경투쟁 승리를 위한 간담회는 그래서 중요하다. 어제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하지 못했지만 노동자들의 지역연대를 건설하자는 취지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인 우리환경이 모든 것을 열어 놓고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자고 했다. 우리환경의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단체의 대표자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동안 우리 운동의 잘못된 관성중의 하나가 바로 ‘대표자’를 중심으로 한 논의체계이다. 대리주의는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자신의 이해에만 밝은 개인으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핑계로 운동은 노동자들을 운동의 주체로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환경투쟁은 새로운 시도이다. 그 결과를 낙관할 수 없지만 만들어 가야한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결정하고 공동의 책임을 나누면서 투쟁을 조직한다. 이것이 진정한 노동자의 민주주의이다. 우리 운동은 ‘민주주의’가 대리주의에 의해서 질식당해 왔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권위 있는 대표자에 의해서 통제되고 가공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힘을 믿는다. 다음 모임은 27일(금)저녁 7시에 하기로 했다. 다음 모임에서는 구체적인 전술들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보안과 권한’으로 제한되었던 광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환경에 대한 투쟁, 원주시청에 대한 투쟁, 지역연대를 위한 방안 등 모든 것이 풍부하게 논의될 것이다. 누구도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의견은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반.드.시 토론될 것이다. 그리고 토론과 설득으로 올바른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다음주 금요일 저녁 7시에는 더 많은 동지들이 지역연대를 위한 설천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실무자가..평조합원이, 평회원이 무슨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을 때려치우고 모이길 바란다. 민주주의는 대표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환경의 문제는 대표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갈 그 세상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