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한 마리. 순례단을 멈추게 하다.

2008년 9월 19일 | bbs_자유게시판

 

<15일차 소식>

지렁이 한 마리. 순례단을 멈추게 하다.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고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100여일 동안 스스로 곡기를 끊고 외마디 소리 없는 비명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비명을 우리 사회가 외면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지 되돌아봅니다.



 


<전남을 떠나 전북에 도착하였습니다.>
고속도로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차량과 한 방향으로 순례를 진행한다는 일은 참 힘든 일이더군요. 구례에서 남원방향으로 향하는 19번 국도. 특히 밤재 터널 이후 도로는 내리막길. 그 길에 순례단의 뒤에서 굉음이 들리고, 곧이어 차로에는 진동이 전해지고, 잠시 후 바람을 가르며 차량이 달려갑니다. 그리고 다시 순례자의 얼굴에는 먼지와 타이어 타는 냄새가 다가옵니다. 오늘은 그렇게 19번 국도 아스팔트 차도에서 순례를 시작하여, 그 길에서 휴식을 취하고 순례를 종료한 날입니다.


오전 7시 40분 순례단은 19번 신밤재터널 전방 출발지점에서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가을 하늘은 너무나 높고 맑았고, 햇살은 아침부터 따가웠습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땀을 흘리며 땅을 기어야 하나 생각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순례단의 진행방향으로 오전에는 산그늘이 자리를 잡아 그나마 순례길을 가볍게 하였습니다.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스님은 오늘도 아침부터 호흡은 거칠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출발 후 40분이 되지 않아 100m의 구간에도 쉽게 지친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오전 9시 40분. 오전 일정 중 중간 휴식이 취해진 20분의 시간. 지친 수경스님은 아예 도로변 갓길에서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옆으로는 굉음을 내며 트럭들이 질주하고 있으나, 온 몸을 사용하는 오체투지는 늙은 성직자를 도로에 눕게 합니다. 지켜보던 진행팀 모두 기겁을 합니다. 문규현 신부님도 역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간단한 체조로 몸의 피곤함을 해소하려 하지만, 선선한 산그늘에서도 얼굴에는 바로 땀으로 범벅입니다. 한 숨의 짧은 시간동안 길 위에서 휴식을 취한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몸을 추스르자마자 곧바로 ‘길 떠나자’며 진행팀을 재촉합니다.

이후 순례단은 전남 구례군과 전북 남원의 경계지역인 신밤재터널은 안전상의 고려로 차량을 이용하여 통과하였습니다. 이후 천왕봉 휴게소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일정을 계속하여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의 SK 주유소 공터에서 일정을 종료하였습니다.


오늘로 순례단은 전남 구례군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하여 15일차 순례길에 전북 남원시 관내 지역에 도착하였고, 이제 한동안 계속 전북지역에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지렁이 한 마리 순례단을 멈추게 하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 찾아갔던 새만금 갯벌. 그곳에는 온통 죽음의 소리와 아우성만이 들렸으며, 삶터를 잃어버린 어민들의 눈물과 한숨. 나도 한 때는 세계 5대 갯벌이었노라고 말하는 갯벌에 길게 늘어선 빈 조개껍질만이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무엇하나 생명력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만금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 순례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얼마 전 정부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의 목적이 바꾸었다는 소식에도 차마 말을 못하였습니다. 다만 그 천연덕스럽고 기막힌 거짓말을 들으며 한숨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오늘 순례길. 너무나 따가운 가을날 불볕더위에서 진행되던 순례길. 온 몸을 땀으로 뒤범벅하고 대지와 호흡하던 순례자들이 잠시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순례자가 아스팔트 차도에 몸을 던지는 순간 눈에 지렁이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차도 옆 옹벽 위 풀밭에서 떨어진 지렁이. 옹벽을 오르지 못하고 두 순례자의 몸 앞에서 차도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차도에서 길을 잃은 지렁이를 다시 풀밭에 놓기 위해 두 순례자가 잠시 멈추었고, 이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순례단이 길에서 만난 것은 온통 지렁이 사체였습니다. 도로에 지렁이 사체가 천지간이었습니다. 19번 국도 도로변 갓길에는 옹벽 위 풀밭에서 떨어진 지렁이가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차도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어있더군요. 휴식 시간에 그 길을 바라보던 문규현 신부님은 “새만금의 수많은 생명이 눈이 보이는 것 같다”며 긴 탄식을 토했습니다. 또한 수경스님은 호흡이 가빠오는 상황에서도 계속하여 염불을 독송하여 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지렁이 한 마리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가, 새만금의 무수한 생명에도 되돌아보지 않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100여일에 가깝도록 곡기를 끊으며 우리 시대의 구조적 아픔을 대변하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외마디 비명에도 되돌아보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미래세대와 생태, 먹거리, 비정규직 등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던 소외자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우리 사회는 경제적 성장이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기업과 자본을 위한 정책이 주류를 이루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자본주의’ 가 우리의 희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으며 그 자체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함에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공동체, 파괴되는 자연생태계에 대해 내 일이 아니라는 말로 무감각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순례단은 길 위에서 스스로 되돌아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오늘 순례길에는 불교 관계자분들이 하루 일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추석 연휴때부터 연락을 하며 순례단의 위치와 일정을 자세히 문의하던 범휴 스님(미국)님은 현재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상황에서 순례단을 방문하였습니다.

범휴스님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연세도 많으신 분들이 정말 계셔야 할 곳에 머무르시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오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하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마음아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귀국한 한국 사회와 관련하여, “미국에 8년 동안 있다가 잠시 귀국을 했는데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습니다. 너무 돈에 치중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런 문제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합니다. 잘사는 것도 좋으나 인문교육, 명상교육 등으로 내적성숙을 함께 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남원지역에 있는 ‘극락암’이라는 사찰의 성환 스님은 “수경 스님께서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고행을 하시는 것을 보고 잠깐이라도 마음을 함께하고자 왔다.”며, “두 종교인이 나란히 오체투지를 하시는 것을 보고 모두가 하나 됨을 느꼈습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함께 성찰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양해석(남원불교대학)님은 “두 분은 마음을 낮춤으로써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현사회의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해결해야 함을 오체투지로 간접적으로 표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체투지와 같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면 자연히 여러 가지 문제가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송희철, 정재권, 유병희(서울) / 김형근 외 1명(평화동 성당) / 김영희 마리아 수녀(서울 살레시오수녀원) / 노태익(대구) / 박장건(구미) / 양해석 외 1명(남원불교대학) / 양희재, 이강재(이강래국회의원사무실) / 성환 스님, 박연옥 외 8명(남원 극락암) / 진여화(실상사) / 범휴 스님(미국) / 이근욱(광주) 님 등이 함께 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9월 19일(금) :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SK 주유소. 시작) – 의충사 앞 19번 국도(경유) – 남원시 고죽로터리(종료. 예정)
● 9월 20일(토) : 남원시 고죽동 고죽로터리(시작) – 고죽동 17번 국도(경유) – 광치동 광리초터리(태양원룸 인근. 종료)
● 9월 21일(일) : 휴식
● 9월 22일(월) : 광치동 광리초터리(태양원룸 인근. 시작) – 춘향터널(경유) – 오리정 휴게소(종료. 예정)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진보신당 남원지구당 관계자께서 생수와 음료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 남원생협과 ‘좋은 열매’에서 아이스크림을 후원해주셨습니다.
– (주)미랑컬의 이성수 본부장님이 마음을 모아 후원해주셨습니다.
– 남원의 극락암 주지스님과 신도회에서 마음을 모아 후원해주셨습니다.
– 김영희 마라아 수녀님이 마음을 모아 후원해주셨습니다.
– 남원 오리정 인근 주민께서 물김치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화계사 신도분께서 간식과 음료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남원 경찰서에서 순례단의 안전을 위해 교통 및 차량 안전을 후원해주셨습니다.

* 도보순례 참가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8. 9. 18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문의 : 순례 진행팀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