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08년 7월 13일 | bbs_자유게시판

세상을 향해 첫 울음소리를 내던 탄생의 기쁨도 잠시 아이는 숨을 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병원에선 생명의 불씨를 살리려고 산소를 넣어주고 온갖 주사를 꼽아봅니다. 엄마는 출산의 아픔도 잊은 채 쉼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아이!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어여쁜 내 자식!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내 자식이 남들과 같지 않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숨이 넘어갈 듯 쓰러지네요, 목을 가누기도 힘들어해요, 말을 하지 않네요. 혼자 일어서지 못합니다. 그때부터 고장난 기계를 고치듯 고쳐보려고 온갖 치료를 다 해보았습니다. 좋다는 것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하여도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야 알았습니다. 내 자식이 장애인이 된 것을…… 시간이 그대로 정지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가족은 장애인가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식을 버려야만 책임지고 키워주는 사회제도 앞에서 먹고살기 위해 시설에 아이를 맡겨 보았습니다. 그런데 말 못하는 어린것은 이유도 모른 채 멍투성이로 발견되었습니다. 함께 살기 위해 더 이상 자식을 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이를 키우려니 아는 사람 다 동원해서 맡겨 보지만 이제는 모두가 힘겨워 쓰러지고 결국 아이는 엄마가 책임져야할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장애인엄마로 세상의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회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가족조차 “차라리 그 때 살아나지 말 것을” 합니다. 조용히 집 안에서 눈에 띄지 않게 키우기를 권합니다. 고개 들고 상대방을 제대로 처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를 안고 어르고 아이 앞에서도 가족사이에서도 이웃에서도 학교에서도 언제나 미안해해야만 했고 그러는 사이 가슴속에는 아픔과 울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서 있고 그럴 때면 아이의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엄마를 현실로 데려오곤 합니다. 아이보다 하루 더 살기를 바라기보다 시시 때때로 내가 책임지고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면 ” 꼭 너이기에 이 아이를 보냈다”는 하느님의 말씀도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그 사이 아이는 한 살씩 나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보며 미소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자식은 내 생명보다 소중하고 아픕니다. 장애인이 되어버린 자식은 열 손가락의 아픔보다 더한 통증을 가슴에 심어주었습니다.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진 몇 시간동안, 다시는 내 자식의 미소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 순간,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제발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애원하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잠든 아이를 찾았을 때, 낮선 거리에서 울고있는 아이를 찾았을 때 ,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다니는 아이를 찾았을 때, 누군가 장난으로 밀어놓은 휄차에서 꼼짝 못하고 엄마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과 마주쳤을 때……복받쳐 오르는 그 무엇이 차라리 내가 죽어 너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하겠냐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그제야 살아 있어주어서 고마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섭니다. 또 다시 긴 한숨에 밤을 지새우겠지만…… 아침해가 떠오르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지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그러나 장애인 부모의 하루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쯤에서 끝을 낼 수 있을까요? 지난밤에도 우리는 수십 번 잠에서 깨어 자는 아이의 코에 손을 대어보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서야 짧은 단잠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이와 함께 살고싶다고 제발 살려달라며 애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것이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머리를 잘라 내 자식의 내일을 위해 바칩니다. 나는 오늘 내 자식의 미소를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 2008년에 원주장애인부모연대(세잎클로버) 부모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