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빛
아침의 빛이 슬픈 꿈을 깨우기 위하여
살나간 내 방문을 소리 없이 흔들고 있다. 새벽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지난 밤을 정리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다가 새벽을 맞은 사람. 내일도 확실히 살려고 일찌감치 잠에 들고 부리나케 새벽에 일어난 사람.오늘 나는 전자다. 아니… 정확히 말해, 지난밤을 붙들었다기보다.. 초저녁에 두 시간 가량 잠을 자버렸고,그때 얻은 에너지를 아직 다 소비하지 못한 때문이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을 보내며 잠 자는 시간이 많이 어그러졌기도 하다. 밤 10시쯤 되어야 약간이나마 더위가 가시고 뭔가 집중하기가 좋았으니까. 새벽 4시 인근 절의 종소리를 들었던 것이 지난 여름 열 번은 된 것 같다 요즘 세상은, 새벽까지, 날이 밝도록 깨어 있었다라고 다른 사람한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 일쑤다. 글쓰는 사람이 그렇지 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삼사 년 전부터 웬만하면 낮에 일하는 스타일이다. 밤에는 스스로에게 홀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낮에 쓰는 글이 훨씬 확실하다. 아주 급할 때가 아니면, 밤 늦게까지 글을 쓰지 않는다. 오늘은 초저녁 잠 2시간에서 대단한 원기를 취한 것 같다. 지금 4시가 되어가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 생각도 명료하고, 과거도 잘 보인다… 근데…. 7시에 잠이 들어 9시 반쯤 처음 깨어났을 때는… 아주 힘들었다. 간만에 세상이 다 허무해보일 정도였다. 1시간 가량 매우 힘들었다. 초저녁에 깊은 휴식을 취해 내 몸부터가 낯설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꿋꿋한 정신상태로 돌아왔다. 아주 힘들었던 1시간 가량, 두 사람을 생각했다. 지율 스님과 김성민 연출자다. 김성민 연출자는 나이가 오십 대인 것 같았고, 호리호리했다. 건강체질로 보이지 않았다. 담배도 꽤 많이 태우시는 것 같았다. 극단 새벽이, 알고 보니 15년이나 된, 제법 장구한 세월을문화의 박토 부산에서 버텨온 유서깊은 극단이었다. 보통 저력이 아니고, 보통 문제의식이 아니고서는이렇게 버틸 수가 없다. 김성민 연출자는 대단히 “분명한 사람”으로 보였다. 극단에서 제일 연장자일 것이다. 젊은 연기자들을 데리고 계속 가야 하는 사람이다. 연장자이기 때문에 더 큰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생각하건대 지금까지 연극 인생에서도 수많은 어려움을 만났을 테고 앞으로도 편할 날이 없을 것 같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그리하여 그들은’ 생각으로 온통 가득차 있을 것이다. 연극 개시일이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마감 시기이다. 분초를 다투며 연기자들과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을 것이다. 천성산 도롱뇽 이런 문제를 다루는 연극이란 게 결코 쉽지 않고,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난 왜 이런 것만 하게 되는가… 씁쓸할 때도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은 코앞의 개막일을 앞두고 머릿속 마음속을 뒤지고 있을 것이다. 거의 완전 몰입 상태이다. 계속 주위의 의견을 듣고 있긴 할 것이다. 내가 갓 잠에서 빠져 나와 온몸이 노곤하니까,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있는 그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 힘든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나, 하고 그가 대단해 보이기 앞서 우리 삶이 왜 이리 힘드나, 하고 서글퍼지던 것이다. 내 몸 상태가 노곤하고 의식이 불투명하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노곤하고 불투명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암튼 김성민 연출자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지율 스님 생각을 했다. 지율 스님이 나타나기 전,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정말 목숨을 바쳐가며 산이든 갯벌이든 앞장서서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런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살고 싶었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자신도 또 인생의 확실한 계기도 없던 때였다. 그런데 지율스님이 나타났고, 분명하게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천 번을 죽다 새로 살아도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마음만으로는 나도 옛날부터 바로 저러고 싶었다! 하고 감탄했고, 도무지 저럴 자신이 없어, 가능하지도 않는 일이라고 나로선 상상의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내는 지율 스님이……… 스님이 미울 적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언제까지나 은인이다. 난 스님을 보면서 사람이란 것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거의 다 사라졌다. 전태일을 생각하면서도 그랬지만,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이 다 생기려고 했다. 그러나 스님도 인간이고… 지난 몇 년 동안,이렇게 홀린 듯이 깊은 잠을 자고 나서 때로 이 세상이 얼마나 황망해 보였을까,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이 세상을 어찌 할까, 오늘은 내일은 또 앞으로는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나, 하고 얼마나 막연하기도 했으랴. 내가 잠에서 갓 빠져나와 혼곤한 상태니까스님이 혼곤하였을 시간들만 느껴지고..그만 안쓰러워지는 거였다. 1시간 가량 갈팡질팡 못했는데, 공간 초록에 와서 사진 넉 장을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깨끗이 탈피할 수 있었다. 나만 힘든가. 다 힘들다. 다 힘드니까, 나라도 의욕을 내자. 의욕을 전염시키자. 무엇보다 꾸준히 하자. 조금조금씩 하자. 기다리자. 아아, 기다렸다가 제발 같이 가자. 이런 생각들을 했고, 이상하게 이것들이 내게 의식의 힘을 가져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