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망 피해가는 골프장… 환경 넘어 ‘지역파괴’ 국민일보 2011.10.11 과거 경기도가 ‘골프도’라는 별칭을 얻은 데 이어 ‘골프장 공화국 논란’은 강원도로 번지고 있다. 강원도에는 18홀 기준으로 운영 중인 골프장 42개, 건설·준비 중인 곳이 41개다. 고속도로 신·증설이 강원도내 골프장 난립을 부추기고 있다. 올해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골프장 난립은 주요 이슈였다. 골프장으로 인한 마을 공동체 파괴 및 생태계 훼손 사례와 당장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반목에 대한 타협책은 없는지 살펴본다. 또한 환경부가 마련한 제도적 대안의 허실을 따져본다. ◇박힌 돌 빼는 골프장=산 좋고 물 좋은 홍천군 구정면 구만리 구만산 자락에는 거제 반씨와 경주 이씨 등이 살고 있다. 지난 5일 이곳에서 만난 ‘홍천군 골프장 문제해결을 위한 범군민대책위원회’의 반종표 부위원장은 지난 7년간을 돌이켜 볼 때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구만리에 들어설 예정인 마운트나인 골프장은 돌 정도가 아니라 마을과 농지와 텃밭을 모두 뒤덮고도 남을 크기의 태산급 바위덩어리다. 반 이장은 “2004년 골프장 사업자측 인사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가시오갈피 농장을 하겠다’고 속여서 야금야금 주민들의 땅을 사들였다”고 말했다. 당시 임야는 한 평에 5000원이었다고 한다. 사업자인 원하레저㈜는 처음에는 몰래 분할 매각을 하다가 소문이 날 때쯤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1000만원씩 돈을 주면서 각개격파에 나섰다. 돈을 받은 주민들이 고민 끝에 양심선언을 해 밝혀진 사실이다. 사업자측은 여느 골프장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고 공사를 밀어붙였다. 업체측은 2008년 8월23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장비를 들여와 공사를 시작했다. 주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나와 결사적으로 공사를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양측 대결은 이미 법정다툼으로 번졌다. 사업주는 업무방해로 주민들을 고소해 1심에서 패소했으나 항소중이다. 주민들은 강원도청을 상대로 골프장사업 인허가 무효소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업체는 돈을 받았던 주민과 안 받은 주민들을 이간질을 통해 반목하게 했다. 반 이장은 “그래도 95%의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말했다. “농사지을 물도 없는데 식수원 위협하는 골프장 웬말이냐” 플래카드가 집집마다 길목마다 나부낀다. ◇갈등의 씨앗, 무기력한 법 절차=지난 5일 오후 2시 홍천 군청에서는 홍천군대책위 마을 대표자들과 허필홍 군수의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허 군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허 군수는 “많은 주민들과는 대화가 심도 있게 진행되지 않으므로 대표자 5명하고만 논의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전했다. 홍천군민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산지전용허가, 입목축적조사 등과 관련해 공무원이 조사결과를 조작했다고 시인했으므로 군수가 직접 나와서 해명해야 한다(서면 동막리 주민대표).” 현재 골프장 시행사와 주민들 간의 민원이 발생한 곳은 7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이츠파크 골프클럽(GC) 착공을 앞둔 홍천읍 갈마곡리 주민들은 최근 환경영향평가 부실 의혹을 제기했다. 녹색연합과 홍천군대책위가 지난 2월 조사한 결과 골프장 건설예정지에서 까막딱따구리(멸종위기2급·천연기념물242호)와 하늘다람쥐(멸종위기2급·천연기념물328호), 삵(멸종위기2급) 등 법적보호종이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 5일 찾은 홍천군청 뒤 석화산의 하이츠파크 GC 예정지 반대편 사면 숲에는 높이 30∼40m에 이르는 은사시나무 군락이 소나무와 섞여있었다. 주민 이경근(64)씨는 “이곳에 까막딱따구리 둥지가 20개가 넘는다”면서 “조류보호협회에서도 6마리를 확인하고 최대 서식지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원주녹색연합 이승현 사무국장은 “은사시나무 군락이 5군데나 있는데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등도 깃들어 딱따구리의 종다양성이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멸종 위기종이 사전환경성검토에서 대부분 누락된다는 점이다. 사전환경성검토 관련규정은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지역은 골프장에서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사전환경성검토는 원칙적으로 사업 자체를 취소하거나 대상지를 변경·축소할 수 있는 단계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그 단계에서 멸종위기종이 확인돼도 환경부가 협의의견 이행여부를 점검하고 사업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음 단계인 환경영향평가로 넘어가 버리면 사업대상지역을 변경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쟁점과 전망=지난달 29일 국회 환노위의 원주지방환경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야당의원들이 원주청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 등은 법적 보호종이 대거 발견된 골프장 건설계획에 대해 원주청이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마친 것은 업무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구만리 마운트나인 골프장의 경우 사전환경성검토와 현지조사 등을 통해 삵, 하늘다람쥐 등 멸종위기종 4종을 포함한 법적 보호종 9종을 발견했지만, 환경영향평가 협의이후 이뤄진 사후환경영향조사에 멸종위기종(백부자)을 포함한 법적 보호종 14종이 추가로 발견됐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이에 대해 “감사청구 사유가 사실과 다르다”면서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에 대한 명확한 사실 확인이 어려울 경우 ‘부실 여부의 판단기준 및 법적 처벌의 근거’ 규정이 없어서 부동의, 반려 등의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멸종위기 Ⅱ급인 하늘다람쥐의 서식지 보호여부에 대해 원주청 관계자는 “타지역으로 서식지 이동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야생동식물에 대한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환경부 공무원들은 멸종위기종을 부득이한 경우 옮겨 심거나 (원형 녹지축을 통해) 도망가도록 해 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27홀 규모인 마운트나인 골프장 주변에는 역시 27홀 규모인 신앤드박 골프장, 54홀 규모의 무릉도원 골프장이 건설중이다. 야생동물도 이 정도의 환경과 경관 변화에는 길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의견이다. 강원도, 특히 홍천과 춘천, 원주에 골프장 건설이 최근 집중되는 것은 고속도로 신설과 확장 때문이다. 신설된 민자 경춘고속도로와 건설중인 동홍천∼양양간 고속도로 및 영동고속도로의 확장 등이 주범이다. 서울에서 춘천, 원주, 홍천까지 오는 시간이 1시간30분 이내로 단축됐다. 그 때문인지 강원도에서 민원이 제기된 7개 골프장 가운데 5곳이 홍천군에 있다. 골프장 반대론자는 물론 찬성론자 대부분도 “이런 도로 과잉투자가 강원도 골프장 난립을 불러왔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이성한 원주지방환경청장은 “강원도의 골프장 난립은 도로가 결정적 원인”이라며 “환경단체들이 골프장을 이슈화하기 이전에 무분별한 도로 중복투자와 불요불급한 도로 확장 반대운동에 더 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