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 삼성 무노조 경영의 뒷면

2005년 7월 7일 | 자료집

‘이건희 회장 고대 소동’이 있던 5월 2일 고대 인촌기념관 앞. 대학생들 틈에서 시위를 하던 삼성 해고노동자 김갑수씨는 이런 증세가 있다고 한다. “차를 타면 항상 뒤를 돌아보게 되거나, 집이나 자동차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김성환 위원장 모친상이 있던 태릉 성심병원. 삼성SDI 수원공장 노동자 강재민씨는 영안실을 나오자 먼저 주변 건물들부터 경계하는 눈으로 살폈다. “밖으로 나오면 일단 건물부터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혹시 저 안에서 누가 날 감시하고 있지는 않나, 이런 생각부터 듭니다” 김씨와 박씨는 모두 삼성에서 노조설립에 관여했던 이들이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은 이 노동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감시와 처벌’이 진행됐다. 무노조 경영을 관철시키기 위한 삼성의 비법은 이런 것이었다.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사전에 전담인원이 붙어 감시한다. 설립 신고를 하기 직전이나 직후에 납치와 감금, 회유와 협박으로 노조 포기를 강요한다. 해외파견을 보내거나 여차하면 해고해버린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이용해 회사가 먼저 노조설립신고서를 내기도 한다. 여기에는 국가권력이 삼성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도 짙다. 높은 연봉과 쾌적한 근무환경, 엘리트들만 모인 국내 최고의 기업. 이런 조건들이 삼성무노조 경영의 비결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조직화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을 만큼 그들의 권리가 완벽하게 지켜지느냐 하면 그것도아니다. 회사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권리가 상충할 때 회사는 더 이상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럴 때 노조가 필요하지만 이 회사에는 노조가 없다. 삼성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기본권리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의 치밀하고 집요한 노조파괴 공작의 실태를 밝힌다.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99년. 삼성에스디아이 수원공장도 조용히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희망퇴직 권고, 각 공정을 사내협력업체 형태로 분사,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 연봉제 확대와 같은 작업이 진행됐다. 회사 정책을 바꾸는 과정이지만 사원들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 노조가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노사협의회가 있지만 구조조정 방침을 승인해주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회사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자며 김용구씨를 비롯해 이 회사 노동자 10여명은 99년 11월 말 노조를 만들자고 뜻을 모은다. 총무를 맡은 김씨는 12월 8일 민주노총 관계자와 만나 지원을 받으며 13일 최종 설립신고를 하기로 계획했다. 삼성 무노조 경영의 ‘진가’는 이때부터 발휘됐다. 노조설립신고를 사흘 앞둔 12월 9일부터 한 달동안 회사는 일정한 ‘공식’에 따라 이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을 ‘각개격파’해 나갔다. #1. 납치-억류-노조포기각서-해외파견 노조설립 총무였던 김용구씨는 12월 9일 야근 뒤 집에서 쉬고 있었다. 곧 이 회사 조아무 과장과 김아무 과장이 김씨 집을 찾아왔다. 회사관리자들은 점심이나 먹자며 김씨를 불러내 차에 태웠다. 그때부터 이들은 김씨를 사흘간 안성, 제천, 온양 등지 호텔로 끌고 다니며 노조설립자 이름을 대고 노조포기각서를 쓰라고 압박했다. 술을 먹이며 달래기도 했다. 관리자들은 수시로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했다. 김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결국 12일 각서를 써주고 사흘간 억류에서 풀려났다. 회사는 다른 사업장 노조 설립 움직임과 김씨를 격리시키기 위해 김씨를 2000년 2월 14일 말레이시아와 2000년 9월 브라질로 출장을 보냈다. 귀국 뒤에도 김씨는 회사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햇다. 사적으로 동료들과 만나는 것도 감시받았고 민주노총같은 사이트 접속이나 메일교환도 제한받았다. 김씨는 “쉬는 날이나 전근근무일 때 관리자들이 ‘어딜 가느냐, 누굴 만나느냐’며 묻는다. 정말 철창없는 감옥같다는 생각이다”고 밝혔다. #2. 납치-감금-권고사직 노조설립에 동의한 장길준(가명)씨한테도 12월 9일 담당과장 최아무 과장과 주아무 과장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들도 저녁이나 먹자며 장씨를 차에 태우고 이천, 울진, 속초 콘도 등지로 끌고 다니며 노조포기 각서와 희망퇴직을 요구했다. 15일 이들은 장씨에게 “다른 동료들은 다 끝났으니 버티지 말라”고 압박했다. 결국 20일 장씨는 희망퇴직에 서명을 했다. 이들은 6천만원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줬고 장씨는 24일에야 수원에 돌아왔다. #3. 일본억류-권고사직 고윤배(가명)씨와 최민호(가명)씨는 노조설립 모임 참가 뒤 12월 6일부터 일본에서 가 연수를 받았다. 11일 귀국 예정이던 이들에게 동행한 권아무 상무, 신아무 과장, 최씨와 동문인 이아무 과장이 “노조설립을 포기를 해야 귀국할 수 있다”며 협박과 회유를 했다. 여권은 신아무 과장이 보관했다. 회사 관리자들은 고씨와 최씨를 분리시키고 오사카 호텔 등지로 끌고 다니며 희망퇴직이나 해외사업장 파견을 강요했다. 결국 최씨는 18일 사직서를 쓰고 귀국했다. 고씨 또한 19일 최씨 소식을 듣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19일 사직서를 쓰고 귀국했다. 20일 신 과장이 최씨와 고씨에게 각각 8천만원을 희망퇴직금 주었다. #4. 억류-해외파견-구속 박경렬씨에게는 12월 10일 오후 정아무 대리, 김아무 직속상사가 집에 찾아왔다. 이들도 같이 밥이나 먹자며 박씨를 차에 태우고, 천안,대전,가평,온양, 춘천 등지 호텔로 끌고 다니며 노조설립포기 각서를 강요했다. 박씨는 결국 노조포기각서를 써주고 16일 귀가했다. 회사는 2000년 2월 8일부터 4월 8일까지 박씨를 말레이시아로 파견했다. 노조설립 가담자 가운데 정태철(가명), 박길영(가명)씨는 중국으로 파견됐고, 임경석(가명)은 브라질로 파견됐다. 박씨는 9월 브라질로 파견된 김용구씨 귀국이 연기되자 이에 자살소동까지 벌이며 항의하던 중 경찰에 구속된다. 수감중 박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2002년 석방되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씨는 여전히 회사쪽 인사들이 자신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보물을 배포하고 다니면 인사과 신 모 과장이 어떻게 알고 따라와 회수해갔다. 집과 식당 주변에도 회사쪽 감시원이 있는데 집 근처에서 나한테 걸린 적도 있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삼성에스디아이 수원사업장은 99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반발을 우려했다. 사원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고 회사측 방침대로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자 이 회사 노동자 10여명이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 노조 설립 신고를 불과 사흘 앞두고 노동자 1명당 회사 관리자들 3-4명이 따라붙어 일정한 ‘공식’에 따라 관리에 들어갔다. 감시-납치-억류-노조포기 회유와 협박-해외파견 또는 해고 수순이었다. 이 작업은 12월 9일부터 한 달 정도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99년부터 2000년에 걸친 이 회사의 치밀하고 집요한 ‘노조파괴’ 작업에 노동자들은 사직을 하거나 해외로 떠나야 했다. 노조 경험이 없는 삼성 노동자들은 조직되지 못한 반면, 회사측은 철저히 조직적으로 노동자들의 노조설립 시도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해 이 회사 한 관계자는 “노조설립은 회사 경영방침과 어긋나므로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전달한 것”이라며 “납치란 말은 어울리지 않다. 본인들이 원했으면 얼마든지 집에 갈 수 있었다. 돈도 당사자들이 요구해서 준 것이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휴대전화 위치추적’ 수원사업장만이 아니었다. 이 회사 울산 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 노동자위원으로 98년 9월 회사측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해 징계해고를 당한 송씨도 회사 관리자들에게 하루 동안 납치를 당했다. 관리자들은 송씨에게 해고투쟁을 하지 말라고 회유와 협박을 했다. 2000년 10월 삼성SDI 천안공장에서도 노사협의위원으로 활동하던 김갑수씨도 동료 4명과 노동조합 건설을 논의하던 중 10월 9일 납치-감금당하고 노조포기 각서와 해외파견 근무를 강요당했다. 김씨는 11월 16일 징계해고당했고 나머지 동료들도 사직하거나 해외로 발령받았다. 2001년 12월 23일에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홈페이지에 “저희 아버지께서 납치를 당하셨어요”란 글이 올라왔다. 22일 에스디아이 울산공장 노동자 최일영(가명)씨의 딸 최정란(가명)양이 올린 글이었다. 최일영씨는 회사쪽 구조조정 추진을 비난하고 노조를 건설하자는 유인물을 회사 안에 뿌렸다. 회사간부들은 그를 이틀 동안 밀양, 산청, 진해 등지 식당과 콘도로 끌고 다니며 ‘다신 이런 일 하지말라’는 각서를 요구했고 최씨는 각서를 써주고 풀려났다. 납치도중 최씨는 딸 최정란양에게 문자메시지로 자신이 납치당한 사실을 알렸고 최양은 이 글을 민노총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다. 김용구씨와 박경렬씨 사례에서 보듯, 회사는 노조설립 시도를 무너뜨리 뒤에도 한 번 ‘찍어놓은’ 이 노동자들을 계속 감시했다. 쉬는 날이면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를 캐물었다. 그리고 2003년. 이들은 또 한 번 충격적인 일을 당한다. 수원사업장 김용구, 박경렬, 고윤배, 강재민, 울산사업장 송수근, 천안사업장 김갑수 등 삼성에스디아이 전 사업장에서 노조설립을 시도했던 이 노동자들 20여명을 2003년 8월부터 2004년 6월까지 누군가 휴대전화로 위치추적을 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월간『말』5월호는 수원사업장 노동자들을 위치추적을 했던 범인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서를 분석해 범인의 동선을 추적한 바 있다. 그 결과 범인은 수원시 정자동에 거주하며, 이 회사 출퇴근 시간대에 맞춰 수원 공장 주변을 한 번 거쳐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수원 주변에 사는 이 회사 비생산직 직원과 유사한 움직임이었다. 피해 노동자들이 이 회사 인사과 담당자들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도 이런 범인의 동선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삼성이 범인이란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우연일까. “돈줄테니 노조 탈퇴해라” 삼성전자 사업장에서는 회사가 돈으로 노조탈퇴를 회유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수원공장 냉장기, 세탁기, 에어콘 이른바 ‘백색가전’ 부문을 광주공장과 해외공장으로 옮기고 이 곳에 첨단 정보기술 연구개발단지를 건설하려고 계획 중이다. 이에 따라 2004년 3월엔 전자레인지 부문 해외이전, 5월에는 세탁기와 에어콘 노동자에게 광주공장 전직과 명퇴를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이전 계획에 당장 일자리가 걸린 세탁기 부문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노조를 만들고 설립신고를 냈다. 이러자 2004년 5월 23일 이 회사 인사부 임직원들이 노조설립 노동자 5명에게 각각 붙잡아놓고 노조포기를 설득했고, 노동자들은 간신히 빠져나왔다.『인천일보』는 이 사건을 5월 24일 가판에서 보도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기사는 그날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에게 돈을 줘서 노조 탈퇴와 사직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규태를 비롯한 이 회사 노동자 3명은 2004년 5월 25일 노조설립신고서를 수원시청 민원실에 제출했다. 그러자 성아무 차장과 인사부 김아무 보안과장을 비롯해 회사 관계자가 김씨를 회의실에 억류시키면서 노조신고서 취하와 사직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여기서 성아무 과장은 김씨가 응해주면 2,9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각서를 써줬다. 김씨는 결국 노조신고를 취소했다. 이같은 일은 또 일어났다. 삼성전자 인사과 성아무 차장은 이 회사 노동자 홍두하씨가 2004년 8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 가입한 사실을 알고 그해 9월 9일 홍씨에게 노조 탈퇴 조건으로 1억 3,5OO억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홍씨는 회사의 회유와 강압을 못이겨 결국 그날 금속노조을 탈퇴했다. 회사는 3개월에 걸쳐 홍씨 예금통장에 돈을 지급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삼전전자의 무노조 정책이라는 것이 회사의 막강한 자금력에 기반한 회유와 강압정책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비판했다. “노조설립? 회사가 5분 전에 먼저 신고” 복수노조 금지조항 조항을 활용해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삼성의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노동자들이 관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내기 전에 회사에서 먼저 ‘유령노조’를 만들어 설립신고서를 제출해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을 무효로 만드는 방식이다. 2000년 5월 삼성 에스원 노동자 5명은 민주노총의 도움을 받아 노조설립신고서를 서울 중구청에 제출하러 갔다. 그런데 이 회사 기술팀 과장이 20분 먼저 강남구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에스원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신고는 무효가 됐다. 삼성코닝에서 분사된 ‘아텍엔지니어링’ 경우는 더욱 ‘아슬아슬’했다. 2001년 10월 이 회사 노동자들은 수원시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회사가 불과 5분 전에 먼저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 회사 노조설립도 무산됐다. 복수노조 문제와 관련해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은 해당관청들이 삼성과 공모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어떻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행정관청에 신고하면 회사가 5분먼저 노조 설립신고했다고 할 수 있나. 행정관청과 야합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이는 단순한 노사갈등 문제가 아니라 돈과 권력으로 경찰, 행정관청과 결탁해 저지르는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범죄행위다” 이같은 의혹은 “성역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법부가 유일하게 삼성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는 지적과 무관하지 않다. 참여정부 들어 정치권력에서 벗어나 “성역없는 수사”를 공언한 검찰은 특히 삼성이 연루된 사건 앞에서는 유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기소를 중지했다. 단병호 의원실 강문대 보좌관(변호사)은 이에 대해 “수사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휴대전화 위치추적 사건을 2003년 춘천지검은 중간용의자를 지목해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벌여 범인을 잡아냈다. 하지만 이번 삼성관련 위치추적 사건에서 검찰은 정황상 용의자로 지목되는 이 회사 인사과 직원들에 대해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강력한 추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국가권력이 지켜준다? 에스디아이 수원공장 노동자 강재민씨 관련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검찰이 보인 태도 역시 이런 의혹을 더한다. 강씨는 2004년 7월 휴대전화 위치추적 사건에서 회사 임직원을 고소했다. 그해 8월에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회사관계자들은 그에게 고소취하와 노조탈퇴를 요구했지만 그 혼자 버텼다. 회사관계자는 작업시 강씨를 1미터 뒤에 서서 욕설과 함께 그를 집요하게 감시하는 ‘1미터 그림자 감시’를 했다. 강씨를 자기 업무와 전혀 무관한 부서로 2차례 전환배치하기도 했다. 강씨는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수원지방노동사무소에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문제는 검찰이 보인 태도다. 검찰은 지난 4월 8일 이 사건에 대해서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애초 수원지방노동사무소는 삼성이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했는데, 검찰이 이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기공동대책위원회는 “수원지방노동사무소장이 지난해 12월 9일 ‘위치추적 고소인들의 노조탈퇴와 관련해, 삼성 관리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곧 수원지방노동사무소는 회사측이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를 확인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원지검은 “노동사무소가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 무혐의 의견을 냈다”며 설명했다. 부당노동행위를 확인한 노동사무소가 수원지검한테서 어떤 ‘수사지침’ 압력을 받고, 송치서를 ‘무혐의’로 고쳐 보낸 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검찰 뿐 아니다. 법원 또한 마찬가지다. 신세계 이마트 계산원 노조설립 문제에서 수원지방법원은 ‘무노조 경영’을 지키고 나섰다. 신세계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막내딸 이명희씨가 회장 자리를 맡아오고 있다. 이 계열사 신세계이마트 수지점에서는 지난해 12월 계산원 노동자 22명이 임금현실화, 휴게시간과 생리휴가 보장들을 이유로 ‘신세계이마트 수지분회 노조’를 설립한 일이 일어났다. 회사 관리자들은 노조원들을 감금하거나 집요하게 회유하면서 탈퇴를 강요했다. 결국 18명이 노조를 탈퇴했다. 이 과정에서 수원지법은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마저 무시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이마트는 경기일반노조가 회사 앞에서 벌이는 시위를 막기 신세계는 지난 1월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수원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가처분 결정문 내용은 이러했다. △경기일반노조 관계자는 신세계이마트 백미터 안에서 유인물을 게시, 전파할 수 없다 △서명활동과 집회도 금지된다 △위반 시 1회당 50만원을 이마트에 지급해야한다. 특히 결정문은 “이마트 수지점이 노동자를 감금 미행하고 있다”“이마트는 무노조경영 이념을 가지고 있다”“이마트가 비인간적인 최저대우를 하고 있다”는 자세한 표현까지 지정해 ‘이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금지시켰다. 이를 어길 경우도 1회당 50만원을 부과했다. 그 뒤 이마트는 ‘법 위에서 노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4월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가 조합원 3명에게 내린 정직징게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회사는 5월 9일 지노위의 이런 결정에도 아랑곳않고 조합원 3명을 징계해고했다. “시청에 삼성 인사팀 직원이 와있어요” 더욱 충격적인 점은 행정관청에 삼성 인사팀 직원들이 상주하면서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신고를 내러 오는지를 감시했다는 사실이었다. ‘행정관청이 삼성과 결탁해 있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백색가전 부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을 시도한 지난해 6월 21일 경기방송은 “1층에 (삼성) 인사팀 직원이 와있다”는 수원시청 관계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당시 취재를 담당한 경기방송 안영찬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원시청 청원경찰한테 물어보니 “시청 뒤 별관에서 인사팀 직원 2명이 상주하고 있다”고 말해주더라. 노동자들이 노조설립 신고서를 가져오는지 감시하기 위해 인사팀 직원들이 시청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에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원시청 한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수원시가 지역혁신기업인 삼성전자와 교환근무를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3년 2주일 동안 시청 공무원 6명과 삼성전자 2명이 교환 근무를 한 적은 있다. 삼성직원들은 시청 기획예산과, 지역경제과, 총무과 각 부서에서 하루씩 근무했다. 2004년에는 우리가 가기만 했지 삼성 직원이 온 적은 없다. 인사팀 직원이 상주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다” 삼성이 급여를 주며 시청 공무원들을 준직원으로 만든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올해도 사업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업무중복으로 기획 담당팀이 없어졌다”며 “2005년에는 해당사업이 없다”고 대답했다. 과거 삼성코닝 인사과에서 노무담당일을 했다는 김형극씨는 97년『어느 삼성노사관리자의 참회』란 책에서 ‘삼성의 노사관리 지침’을 이렇게 요약했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철저히 활용…유령노조의 완벽한 설립을 위해 시청 또는 군청에 매일 지킴이를 보내는 한편, 관계자에 대해 지속적인 준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준삼성직원으로 적극 협조얻는다…직원들에게 너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삼성에선 실질적인 노조를 만들 수 없을 뿐 아니라 수많은 점조직을 통해 노조설립 기도는 사전에 발각나고 말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심어준다…삼성에서 이렇게 잘해주지 않느냐 당근수법을 쓴다” 앞선 사례들은 실제로 이러한 노무지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성은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노동자들을 각개격파했다. 조직되지 못한 삼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회유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돈을 받는 식으로 물러났다. 노동계가 “삼성노조는 돈받고 끝내려고 노조를 조직한다”는 불신을 드러내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앞으로 삼성은 가전부분을 정리하고 첨단 산업단지로 재편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려 한다. 일터를 잃게 될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하는 식으로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저항할지 모른다. 이는 삼성 무노조 경영과 계속 부딪히게 될 것이다. 2005년 대한민국의 ‘팬옵티콘’ 주목할 점은 삼성의 이 치밀한 노조파괴 전략이 낳은 효과다. “삼성은 막강한 정보력이 있다” “삼성은 국가권력 위에 있다” “감성 밑에서 노조는 꿈도 못꾼다”하는 생각이 삼성 노동자들 의식에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18세기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죄수를 교화할 목적으로 ‘팬옵티콘’(Panonticon : ‘다 본다’는 뜻)이란 원형감옥을 제안했다. 원형기둥 모양으로 생긴 이 건물 각층에는 죄수방이 있고 건물 안 중심에는 각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감시탑이 서있다. 감시탑은 어둡게 하고 죄수방들은 모두 환하게 유지한다. 죄수는 감시자를 볼 수 없지만, 감시자는 중앙에서 모든 죄수를 둘러볼 수 있다. 죄수는 감시자가 늘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일거수 일투족을 스스로 통제하게 된다. 저항의식은 거세당하고 규율은 자연스레 몸에 밴다. 팬옵티곤의 진정한 효과는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감시자의 눈’을 감시 대상자 내면에 만들어서 그 스스로 자기를 감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기 순이익 10조원, 반도체와 엘씨디 시장점유율 세계1위, 사회공헌활동 규모 국내1위. 대한민국 대표 기업 삼성의 이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노동자들에게 ‘감시와 처벌’을 내면화시켜 ‘무노조 신화’를 관철시켜가는 ‘팬옵티콘’의 형상이 숨어있다. 이태준 기자 ltj@digitalmal.com 월간말 2005년 2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