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원도의 품격

2008년 4월 14일 | 보도자료

[강원논단]강원도의 품격 강원일보 ( 2008-4-14)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한 수학자가 쓴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내용에서 ‘국가의 품격’은 그에 합당한 국가적 덕목이 필요하며, 이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렇다면, 우리 강원도의 품격은 어디에 있을까? 자연환경, 도시건축물, 역사문화공간, 강원도 마을과 사람 등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과연 품격은 있는지 자문해 보자.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품격의 잣대는 새 것, 큰 것, 비싼 것으로 바뀌어 버린 것 같다. 헌 것과 작은 것, 싼 것은 품격이 모자라는 것으로 인식되어 점점 우리 곁에서 밀려나고 있지 않은지? 우리가 슬픈 것은 우리가 한번 가본 곳, 우리가 좋아했던 공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비단 시골 마을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도심 한복판을 지나치다가 네거리 모퉁이에 높이 올라가는 건물을 보았다. 참으로 답답하고 슬퍼졌다. 이곳은 본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군인극장이 있던 곳이다. 이를 역사건축물로서 보존하고 넓은 공간에 광장이나 공원을 조성하여, 때로는 군악대 퍼레이드와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공간으로 조성한다면, 시민들이 모여 행복을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옛 것을 살리고 가꾸는 작업은 이미 세계적 트렌드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100년이나 된 낡고 허름한 부두 창고나 맥주공장 창고를 개조하여,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볼거리를 제공하며 결혼식장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서울 정동에 있는 대법원 건물을 시립미술관으로 개조한 것도 좋은 사례이다. 내부는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전시공간으로 사용하지만 건물의 앞부분은 옛 모습 그대로 남겨 가로공간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시의 품격도 중요하지만 한적한 농촌마을도 도심 못지않은 품격을 높이는 준비가 필요하다. 강원도에 발을 붙인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내가 태어난 시골 마을을 떠올리며, 이곳이 정말 정겹고 아름다운 마을로 발전해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변화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더불어 점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마을의 세태에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력함을 느낀다. 마을 앞을 떡하니 가리고 있는 숨 막힐 듯한 저수지 둑방이며 마을 앞산에 마치 파르테논의 위용을 자랑이라도 하듯 우뚝 서 있는 철골조 공장건물, 여기저기 농가를 헐고 지은 조립식 주택들이 하나같이 마을의 오랜 전통이나 기운(氣運)과는 거리가 먼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다. 농촌마을의 경우, 제도적인 허점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일정 면적은 우선 집을 짓고 나서 나중에 신고만 해도 되는 것이 한 예이다. 따라서 전체 마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아 새로 지은 주택들은 그야말로 제각각 불협화음을 이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행정부서, 연구자, 대지 소유자, 설계자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마을단위의 품격을 높이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일본 도쿄대 대학원의 학제 시스템에서 공감한 바 크다. 대학원에 ‘마을가꾸기 대학원’이 개설돼 있었다. 마을조성작업을 대학 차원에서 연구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집중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강원도가 도차원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강원발전연구원과 각 지역대학의 연구소와 연계하여 ‘강원도 마을의 품격을 높이는 연구’를 해야 할 때이다. 최재석 한라대 교수 ▼최재석 △일본 요코하마국립대 건축설계학 박사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원주지방환경청 사전영향평가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