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원도의 길

2008년 3월 24일 | 보도자료

[강원논단]강원도의 길 ( 2008-3-17 ) 비교적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 바로 걷기이다. 저녁을 먹고 틈을 내어 학교 주변 농로 길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좀 더 많이 걷고 싶어 하는 몇몇 교수들은 아직 공사가 덜 끝난 순환도로를 걷는다. 주위보다 약간 높은 도로를 걷다 보면 멀리 시내의 야경이며 주변 마을이 한눈에 들어와 시원한 감을 느끼게 한다. 그나마 이곳도 차량 통행이 되면 더 이상 걸을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길과 관련된 낱말이 많다. 시골길, 오솔길, 골목길, 가로수길, 기찻길, 강변길, 바닷길, 언덕길, 숲길, 논두렁길 등…. 얼마나 익숙하고 정겨운 모습들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가? 그런데 골목길은 재개발로, 가로수 길은 도로 확장으로, 논두렁길은 콘크리트 포장으로 변해 우리 주변에서 옛길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이는 오로지 속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차량 없이는 현대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 생활에 너무 깊이 침투해 있다. 문제는 새 것과 옛 것, 편리함과 불편함의 조화로운 접근이다. 불편하면 없애버리는 성급함이 만연하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는 빠름과 느림의 조화가 필요하다. 오르지 속도에 지배당하여 우리의 정취를 잃고 있으니 너무나 안타깝다. 과거의 기억들이 속도에 의해 철저히 지워지고 있는 복잡한 현대생활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창의적 삶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걷는 ‘길’ 하나를, 천년을 지켜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이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곱의 무덤이 있다는 스페인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천년을 한결같이 지켜오고 앞으로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이 순례자 길을 걸어보고자 전 세계에서 도보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음에도 재미도 없고 지루할 것만 같은 ‘걷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피에로 쌍소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길은 ‘느리게 살 수 있는 지혜와 작은 일에도 감탄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인 것이다. 요즈음 걷기 열풍이라 할 정도로 여러 곳에서 걷기대회가 많이 생겨나고 있으나 정작 걸을 만한 길이 없고 기억할 만한 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성격도 친목적 소모임에서 정치적 목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걷기를 지나치게 특별한 목적으로 한정한다면 걸으면서 얻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이해나 아름다운 풍경과의 만남은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강원도에 맘 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많았으면 한다. 뻥뻥 뚫리는 고속도로나 지방도 못지않게 두 다리만 갖고도 시작점이 어디이든 목적지가 어디이든 가고 싶은 모든 곳을 걸어서 갈 수만 있다면 강원도의 아름다움은 새롭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가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 걸을 만한 길이 없어서야 강원도답다고 하겠는가? 짧게는 우리가 사는 동네 주변을, 길게는 원주 춘천 강릉 등을 녹색 길(green way)로 이어 품격 높은 강원도 길로 만들면 어떨까? 박진영이 만들고 그룹사운드 ‘god’가 노래한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알 수 없지만(후렴)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라는 내용이다. 길은 통행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길이 있기에 걸어보고 싶은, 비록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하였으나 걸으면서 점점 커다란 이상을 품게 해주는 그런 길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 길은 속도를 대신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강원도 길’을 걸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소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최재석 한라대교수 ▼최재석 △일본 요코하마국립대 건축설계학 박사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원주지방환경청 사전영향평가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