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와 별난 생각 정유선-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 행구동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살구가 많은 동네이다. 원주에서 가로수로 과일나무를 심은 곳은 행구동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 요즘 행구동 길가의 살구나무에 살구가 주홍빛으로 탐스럽게 익고 있다. 나무 가득 주렁주렁 달린 예쁜 열매는 보기만 해도 그 시큼한 맛 때문에 입에 침이 고이고, 한 개 따서 얼른 베어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행구동 살구둑 길엔 비상등을 켜고 도로가에 내려서서 살구를 따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까치발을 하고 손으로 따는 사람도 있고, 들고 있던 우산으로 따는 사람도 있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만한데 어떤 사람들은 나무를 발길로 차고, 우악스럽게 흔들어 대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긴 장대를 준비해서 따기도 하고, 아예 나무 위로 올라가 작정하고 따는 사람도 있다. 그저 몇 개 따서 맛만 보면 될 것을 어쩌자고 죽기 살기로 다 따는지 보기에도 살구나무의 수난이 안쓰럽다. 저마다 들고 있는 커다란 검은 봉다리에 가득가득 다 가져다가 뭘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장에 가서 팔지는 않을 테고, 식구들이 먹기엔 너무 많아 썩어버리기 십상 일 듯 보이는데 말이다. 지금 사람들 손에 가지가 부러지고, 발에 차이는 저 살구나무는 봄에는 연분홍빛 꽃으로 우리에게 봄소식을 전해주었고, 여름에는 푸른 녹음으로 시원함을 선물해주고 있다. 게다가 맛있는 열매까지 덤으로 안겨주니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닐까? 아무리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내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횡재처럼 얻은 열매인데, 몇 개는 사람이 먹고, 몇 개는 새가 먹고, 또 몇 개는 다시 땅이 먹고, 그리고 눈도 즐겁게 오래도록 나무에 달려있게 놔둬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유실수를 가로수로 심는 경우 가로수의 수난이 심한 것은 전국이 마찬가지여서 각 지자체마다 ‘가로수 조정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등에 따라 과태료를 물리는 등의 처벌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길에 떨어진 은행 몇 알을 주웠다고, 나무에 달린 과일 몇 개 따먹었다고 처벌까지 받는다는 것은 어쩐지 너무 각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로수의 열매를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싹쓸이 하지 않았다면 이런 법안까지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행구동의 살구는 원주시의 것이다. 원주시는 원주시민이니 결국 그 살구는 원주시민 모두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무는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우리도 그런 나무를 조금이라도 닮아서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생각하면서 행동하면 좋겠다. 시민 공동의 재산인 살구나무의 살구를 혼자 다 따버리는 일이 작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습관이 모여 그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양최대, 세계최고 등, 크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작은 규칙들을 지키는 것은 하찮게 여기는 듯하다. 작은 빗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벽돌 한 장이 모여 큰 건물이 되듯이 작은 규칙과 규범들을 누구나 지키고 소중히 생각할 때, 그 사회는 도덕적이고 큰 규칙과 규범이 지켜지는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 때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붉은악마의 열띤 응원보다, 응원이 끝난 후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작은 규칙들을 지켜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을 세계 속에 우뚝 서게 하는 길이리라. 살구나무를 보면서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 하루다. 원주투데이 2006년 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