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흰개미와 집

2006년 2월 23일 | 보도자료

흰개미와 집 최재석 한라대교수· 원주녹색연합공동대표  요즘 모든 분야에서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환경문제다. 그러다보니 소위 `웰빙(well-being)’ 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을 사먹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고, 슈퍼나 시장에 가보면 `친환경 농산물’ 코너가 마련돼 있을 정도로 일반 농산물과 차별화해 수익을 올리는 회사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판매원에게 농약을 쓰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주춤거리며 `저(低)농약 채소입니다’ 라고 답할 뿐이다.  농약을 쓰긴 썼는데 어느 정도 썼는지 소비자는 알 턱이 없다. 완전한 `웰빙’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친환경 문제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난개발, 대기오염, 수질오염, 그리고 쓰레기 등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유해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어느 한 가지 문제가 없다고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물이 오염되면 주변의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주듯, 서로 별개의 인자처럼 작용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실타래를 풀듯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면 환경 친화적 분위기로 갈 수 없다.  겨울에 가장 문제가 되는 난방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도시는 물론 농촌도 대부분 기름이나 가스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기름 값이 지나치게 오르다보니 최근에는 잔손이 많이 가는 연탄보일러나 나무보일러를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편하기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화학연료의 사용으로 자원의 고갈은 물론 대기오염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지구온난화로 생태계 파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 난방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 구조를 갖는다면 얼마나 경제적이겠는가?  이는 경제성을 넘어 자연자원의 고갈을 막고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온차가 극심한 강원도 지방에 여름에는 냉방을, 겨울에는 난방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꿈같은 현실을 생각해본다.  그런데 최근 프란스 요한슨의 ‘메디치 효과(The Medici Effect)’라는 책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게 됐다.  건축가 믹 피어스(M. Pearce)는 아프리카의 한 회사로부터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에어콘 시설이 없는 기능적인 건물(쇼핑센터)을 지어 달라’ 는 주문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무더운 지역에서 그러한 황당한 주문을 하다니!  그러나 놀랍게도 평소에 환경에 관심이 많던 피어스는 무더운 지역에 사는 흰개미가 탑 내부를 시원하게 만드는 방법을 응용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 냈다고 한다.  흰개미와 에어콘 없는 건물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흰개미는 땅속에서 올라오는 시원하고 습한 공기를 개미탑 상부의 통풍공(空)을 열고 닫음으로서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개미탑 내부의 습기를 이용하여 곰팡이를 만들고, 이를 먹이로 사용한다고 하니 놀라울 수 밖에 없다.  흰개미뿐만이 아니다. 하세가와 다케시가 지은 `생물의 건축학’을 보면 흰개미, 황다리호리병벌, 배짜기새, 비버 등 곤충이나 동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자연에 적응하면서 그들만의 지혜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튼 피어스는 자연적 상태의 건물을 설계함으로서 자원을 아끼고 보존하는 방법으로 환경건축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런 결과는 수많은 다른 생각들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탄생을 가져왔듯이,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별개처럼 보이는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는 것만으로 생태적 접근으로 가지 않겠는가? (강원일보 2006년 2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