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길과 담장

2005년 12월 8일 | 보도자료

길과 담장 최재석 한라대교수/원주녹색연합 상임대표 길(街路)을 의미하는 ‘street’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포장된 도로’라는 의미로 길 양쪽에 건축물이 늘어선 경우를 가리킨다. 길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담장은 ‘집터 등의 경계선에 설치되는 연속된 벽’이라는 의미로, 우리말에서 담, 담벼락, 울, 울타리라 불린다. 담장은 꼭 길을 따라 설치되는 것만은 아니다. 대지와 대지 사이의 인접경계선에도 담장을 설치하여 내 것과 네 것을 구분 짓고 있다. 건폐율이 높은 도심에는 건물 파사드 자체가 담장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 담장으로 경계를 표시한다. 담장은 우리들에게 포근함, 안전, 방어, 그리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접근해서 안된다는 배타적인 측면도 강하다. 어릴적 보고 자란 시골의 토담이나 돌담은 주변과 어우러져 그다지 높지 않았다. 담벼락에 서면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의 길은 어떠한가? 콘크리트 담장은 지나치게 높고 위에는 철조망을 얼기설기 친다든가 심지어 깨진 유리조각을 심어 놓기도 하였다. 보기만해도 소름끼치는 우리의 가로공간 모습이다. 가로환경이 어린이의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문제는 담장으로 인하여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가로공간에서의 다양한 일상적인 풍경, 집 근처에서 노는 아이들, 볼 일을 보러 가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로 길에서 이루어진다. 즉, 길은 사회적 활동의 근거지인 셈이다. 사회생활이 길에서 시작되어 길에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길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곳이다. 얼마 전 본지(本誌)에 ‘담장 허물기 사업에 동참하자’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지없이 반갑고 기쁜 일이다. 도심은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단 몇 초간 앞에서 눈을 떼면 여지없이 부딪치고 만다. 그만큼 도심의 길은 인간성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이면도로나 골목길을 걷다보면 좁은 도로 폭에 양쪽의 높다란 담벼락으로 극히 폐쇄적이어서 오로지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다. 뭔가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다보니 걸음이 빨라지고 걷는 동안 습관적으로 뒤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가로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시다. 10여년전인 1996년부터 담장 허물기 사업을 시민단체와 함께 추진하고, 이를 시의 조례(條例)로 제정하여 본격적인 운동에 나서고 있다. ‘담장을 허물면 우리 모두가 이웃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 담장을 헐어 마당을 가로공간과 연계하여 주차시설을 만들기도 하고, 담장을 허문 후 이웃과 의사소통이 잘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회색 시멘트 담벼락 대신 푸른 나무가 심어져 있어 답답했던 마음까지 후련해집니다. 도둑요? 옆집, 앞집이 다 쳐다보니까 오히려 안전해요. 왜 진작 담을 허물지 않았는지 후회할 정도입니다.” 담장을 허문 도시민의 이야기이다. 내년부터 ‘생명원주21실천협의회’에서 담장허물기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말 반가운 일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원주시의 재정적 지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벌써부터 담장 없는 건강한 원주시를 마음 속에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