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환경과 여가 최재석 한라대 교수 /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사람의 하루 생활패턴을 생산, 유지, 여가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분석한 이가 있다. 극히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를 이들 세가지로 나누어 투자한다고 한다.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지만 한 달에 하루도 쉬지않고 근무한 적이 있다. 휴일은 이틀에 불과했고 게다가 근무지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라 그중 하루는 대부분 차 타는 데에 소요되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없던 시절이었다. 요즈음 대부분의 관공서나 기업이 토요 격주 휴무에서 주5일 근무제로 들어갔다. 일간신문에서 금요일특집으로 발행하던 주말 섹션이 목요일로 앞당겨진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란 적이 있다. 금요일 오후부터 이미 주말이 시작된 셈이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도미노 현상처럼 많은 분야의 시스템을 바꾸어 놓고 있다. 주말여행 패키지와 그에 필요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가를 즐기려는 동우회모임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도심의 공원이나 강변에는 산책이나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여가시간의 증가는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문제는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도시환경이 여전히 여가생활에 알맞은 패턴으로 바뀌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말마다 많은 돈을 들여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 녹지공간이 조성되어 언제나 산책할 수 있고 음악당, 미술관, 도서관 같은 문화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여가를 통한 자기계발의 기회를 갖는다면 얼마나 경제적이겠는가? 그러나 아직은 요원(遙遠)한 듯하다. 독일의 심리학자 노이만은 한 조사에서 수천 명에게 두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한 장은 사람들이 붐비는 사진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중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 한적한 곳을 선택한 사람이 60퍼센트였고 붐비는 곳을 고른 사람이 34퍼센트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보낼 것이라 생각되는 곳은?’ 이라는 질문에서는 61퍼센트가 붐비는 곳을 지목했고 한적한 곳을 택한 이는 겨우 2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려면 본인의 선택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답에서 도심에 왜 여가공간이 필요한 지를 느끼게 한다. 도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 주변을 둘러본다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흥밋거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자동차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마음놓고 걸을 수 있도록 인간적인 배려가 더해진다면 도심은 한층 즐겁고 여유로와질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일수록 최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학교라는 뜻의 ‘school’은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a’에서 나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여가를 잘 활용하는 것이 곧 학문하는 셈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적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