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성(性)은 있는가? 최재석 한라대 교수/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사전적으로 性(성)은 ‘마음 심’(心)에 ‘날 생’(生)을 합한 글자로, 즉 ‘하늘이 주는 고유한 물(物)의 본질적 특성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性을 합한 글자로 성품, 성격, 성질, 성명, 성별이 있고, 뒤에 붙어서 근성, 이성, 천성 등의 낱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만큼 性에는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말하고, 또한 다른 것과 어떠한 차이(差異)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원주에 살고 있다고 하니까 원주에 ‘가 볼만한 곳이 있느냐’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곳이다’ 라고 자랑스럽게 추천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일반적으로 원주하면 상징적으로 치악산, 강원감영, 구룡사 등을 들고 있지만, 이런 곳에 외지인(外地人)이 와서 보고 감동하고 원주에 또 들리고 싶고, 그들이 주변사람들에게 ‘원주는 가볼 만 한 곳이야’ 라고 자랑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간다. 원주를 대표하는 것과 원주성(性)을 갖는 고유한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원주성(性)은 원주의 오랜 역사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새롭게 가치를 창출하여 발전시킬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속적 관심을 갖고 가치를 발굴하여 미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 가치의 발굴보다는 공장유치, 기업도시 유치, 정부기관 유치 등 온통 유치일색(誘致一色)이다. 이런 것 하나 유치 못하면 원주가 무너지고 원주가 살아남기 힘든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에 놀랍고 유치(幼稚)할 뿐이다. 치악산과 백운산이 뒤에서 감싸고 있는 원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지만 이것 하나 우리는 못살리고 있다. 치악산 자락에는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형태와 크기를 갖는 건물군(群)이 어설프게 들어서고, 원주천변에는 고층아파트가 강변을 따라 벽(壁)을 만들고 있어 시민들의 원성(怨聲)이 자자하다. 이것뿐만 아니라 시내 어디를 가든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가 없다. 건물과 도로변에는 온갖 잡동사니로 엉켜있어 여기서 문화를 얘기하고 생태를 논하며 건강이 있다고 주장하겠는가. ‘건강도시’는 무엇이고 ‘건강도시’는 어떻해야 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외국의 어느 시장(市長)은 스스로 앞장서서 기업들이 마구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이해가 된다. 도시의 발전이나 성장의 이면에는 그만큼 파괴와 오염이 동반되어 어느 시점에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시설의 유치 이전에 원주를 ‘어떻게’ 발전시키겠다는 원칙과 그림없이 그냥 원주에 와주기만 하면 ‘좋다는 식’의 편의주의적 발상은 원주를 특색도 없고 미래도 없는 도시로 만들기 십상이다. 원주를 물리적으로만 키울 것이 아니라 원주성(性)을 찾아내고 가꾸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 원주에 맞는 택지개발, 주택건설, 그리고 기업유치 등이 뒤를 이어야 다른 도시와 차별화될 수 있다. 건강도시로 가기 위한 잣대를 단편적 접근이 아닌 향토연구자, 철학자, 사학자, 화가, 음악가, 생태학자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원주성(性)을 찾아내고 키우고 그리고 이를 도시 성장에 적용시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