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차 없는 12시간의 소망

2005년 8월 30일 | 보도자료

차 없는 12시간의 소망 -원주투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 최재석 (원주녹색연합공동대표 한라대 건축학과 교수) ■ 원주시민의 목소리 ▷원주가 발전하는 것도 좋고, 아파트가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우선 마련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한다. (중략) 원주시장이 이런 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원주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경제적인 발전보다는 문화가 살아있는 그런 도시라는 것을 말이다.(나경희/2003.11.3) ▷가까운 곳에서 문화행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유병선/2004.5.3)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별도의 공원을 조성하는 것보다 시민 일상과 맞물린 휴식공간이 만들어졌으면 한다.(최옥경/2004.5.3) ▷도시의 팽창에 역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도시를 얼마나 쾌적하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함혜숙/2004.4.26) ▷다른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이 되면 원주에 있는 집에 내려온다.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러 나오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외지에 공원이 있는 것보다 도심 속에 공원이 있어야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고 청소년들도 공연이나 전시회 등을 통하여 건전하게 자신의 끼를 발산할 수 있을 것이다.(이호석/2004.8.23) ▷원주시에서 도심 한가운데 대규모 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주 시민들은 정작 쉴만한 공간이 없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박윤정/2004.8.23) 문제는 「원주투데이」에 실린 위와 같은 시민들의 단상(斷想)이 일부 시민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라는데 있다. 원주 도심에 대한 시민의 자화상을 몇 마디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쉴 곳이 없다. 갈 곳이 없다. 볼 것이 없다. 좀 지나치다는 생각을 넘어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실제 원주 도심축에 해당하는 남부시장에서 원일로를 따라 원주역까지, 혹은 남부시장에서 중앙로를 따라 문화극장을 거쳐 원주역까지, 그리고 남부시장에서 평원로를 따라 원주역까지 걸어보면 시민들의 생각을 실감케 한다. 한마디로 짜두리 같은 소공원 하나 없다. 시민들의 최소한의 기대마저 저버리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어디쯤 가면 공원이 있겠지 하는 암시조차 주지 못한다. 가까이 원주천이 있지만 원주천까지 가기도 불편하고 가봐야 기대할 게 없다. 콘크리트 바닥에 자동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여러 방법들이 고안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대형건물 하나 지어 배려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다. 그 많은 시민들을 어떻게 한 공간에 소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간다. 시민들의 다양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방법이 제안되어야 한다. 원주시민의 눈은 높다. 시민들은 원주 도심이 어떠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데 놀라울 뿐이다. 다만 같은 원주시민이자 원주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원주시장만이 시민의 생각과 눈높이가 다른 것일까? 아니면 좀더 높은 이상을 꿈꾸고 계신 것일까? 시민들의 생각이 언제나 실현되어 시민의 품으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을까? 다만 답답할 뿐이다. ■ 원주도심의 현주소 중앙동은 원주시 한가운데 위치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그 중심에 중앙로가 있다. 중앙동은 남부시장 앞에서 원일로, 중앙로, 평원로, 강변로 이 4개의 도로가 북쪽을 향하면서 하나씩 분리되다가 중앙로와 평원로가 문화극장에서 만나고, 여기서 합해진 도로가 원주역에서 다시 만나는 도로공간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 원주뿐만아니라 대부분 도시민의 의식조사에서도 구도심은 지저분하고 들르고 싶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거부감은 시민들을 도심에서 떠나게 하여, 매년 중앙동의 거주인구 감소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인구 감소는 몇년 후 현재 위치한 원주시청(2007)과 원주역(2008)이 이전되면,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동반적으로 이전하게 되어 도심부의 공동화(空洞化)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원주의 심장은 중앙동이고 중앙동을 제껴두고서는 원주의 정체성을 살리기 어렵다. 여러 가지의 복합성으로 인하여 도심부로서의 중앙동을 󰡐어쩔 수 없는 곳󰡑으로 내버려 놓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중앙동이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민은 물론 시(市)에서도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도 도심 외곽의 팽창으로 인한 신도시의 발생으로 낙후된 구도심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을 엿볼 수 있다. ■ 재래시장의 자기변신 중앙동과 그 주변은 시장동(市場洞)이라고 할 정도로 재래시장이 많다. 원일로의 시작점에 남부시장이, 원일로와 중앙로 사이에는 중앙시장과 자유시장이, 중앙로와 평원로 사이에는 중앙농수산물시장이, 평원로와 강변로 사이에는 풍물시장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로와 그 주변에 재래시장이 밀집하고 있어, 도심의 심장부로서 중앙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재래시장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재래시장은 한마디로 고사(枯死) 직전󰡑이라고 한다. 재래시장 또한 계속 늘어나는 주변의 대형할인점으로 매출이 감소하고,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들르고 싶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들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재래시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市) 차원의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재래시장 스스로 자기변신(變身)하고자 하는 의지 또한 중요하다. 재래시장의 이런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장(場)이 서는 날이면 골목마다 사람들로 꽉 찬다. 5일을 기다렸다 장보러 오는 사람들, 사람들 틈에 끼여 구경하는 사람들,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과 좀 깍아 보려고 애쓰는 아주머니들, 애정어린 눈으로 옛날을 회고하며 살펴보는 노인분들, 재래시장은 활력이 넘치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활발한 거리도 장이 서지 않는 날은 상점의 대부분이 문을 닫고, 드문드문 주차된 차량으로 으스스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장이 서는 날도 사람들이 있는 골목과 없는 골목의 차이는 너무나도 다르다. 지금의 재래시장 형태는 시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계성을 갖고 있다. 5일마다 서는 장날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시민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장보고 귀가해버리는 약점을 갖고 있다. 고객이 도심에서 즐거움을 갖고 오래 머물러야 도심부는 활성화되고 시민들 사이에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우선, 재래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재래시장이 상설화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재래시장총연합회(회장 최재희)에서도 이미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중앙로와 그 주변의 노점상을 재래시장으로 끌어들여 항시 시장이 열리는 방법과 또 다른 하나는 5일장이 아닌 매일 혹은 격일 정도로 상설시장을 특화하여 재래시장을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재래시장이 활성화된다고 하여 도심부가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시민들이 아무 장애 없이 쇼핑하고 휴식할 수 있는 재래시장 사이의 오픈 스페이스가 네트워크처럼 형성하지 못하면 공간이 단편적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시민들이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재래시장 사이를 연결하고 시민들이 즐거움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중앙로이다. 재래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재래시장 자체의 상설화와 현대화, 그리고 재래시장을 연결하는 중앙로를 비워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다. 이미 앞서 보았듯이 중앙동에는 소공원조차 없어 쉴 곳이 없는데 문제가 있다. 중앙동은 이미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어 새롭게 공지(空地)를 마련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앙로가 차없는 거리로 제안되고 있는 것이다. 원주 도심부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중앙로가 󰡐가장 적합하다󰡑(82%) 는 「생명원주21실천협의회」의 보고(원주투데이/2004.10.11)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로를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중앙로를 비워도 중앙로에서 원일로나 평원로까지 짧게는 50m에서 길게는 120m정도 떨어져 있을 뿐으로, 중앙로를 통행하는 차량을 원일로와 평원로로 분산시켜 이곳으로부터 중앙로까지 보행을 한다든가 짐을 나른다고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리이다. 주차 또한 원주천 둔치 공용주차장을 적극 이용할 수 있도록 강변도로 하부에 친환경적 터널을 뚫어 원주천에서 중앙로까지 보행자전용도로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 이곳과 더불어 중앙로 주변의 주차장 지도를 만들어 시민들이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지혜 또한 필요하다. 최근에 공론화되고 있는 󰡐원일로와 평원로의 일방통행󰡑(원주투데이/2004.9)의 제안은 원일로와 평원로의 시작과 끝점이 서로 만나는 서클(circle)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보이고, 일방통행으로 원일로와 평원로의 차도폭을 일부 줄이는 대신 보도폭을 확장한다면 차없는 중앙로와 그 주변이 네트워크화(化)되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활동할 수 있다. 좀더 시민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현재 복원중에 있는 강원감영의 담장을 없애고, 주변에 보행공간을 확보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면, 도심에서 부족한 오픈스페이스가 조금이나마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역사공간을 원일로의 원동성당과 가톨릭센터, 구군인극장 자리, 평원로의 각종 극장시설들과 연계하여, 시민들이 휴식과 쇼핑, 그리고 문화체험이 동시에 어우러지도록 발전시킨다면 원주의 중심성은 되찾을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강원감영과 중앙로, 재래시장과 원주천을 잇는 동서축과, 이전될 원주역(원주시민중앙공원안, 『원주평론』, 2004.8)과 중앙로를 연계한 남북축을 동시에 고려한다면 원주 도심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미래상에 대해 맨 먼저 고려해 볼만한 장소가 중앙로이고, 중앙로가 차없는 거리에 대한 1차적 실험의 대상이라고 본다. ■ 재래시장의 현대화 내용 금년 7월에 󰡐재래시장육성특별법󰡑 이 발의되어 2005년 3월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시행할 계획이라고 하니, 이런 제도적 뒷받침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시(市)에서도 재래시장과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한 취지는 대형할인점 등으로 인한 재래시장의 피해로부터 상인을 보호하고, 낙후된 재래시장을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재래시장을 현대화시킨다는 것이다. 재래시장의 시설을 개조하고자 하는 지역에서 재정을 신청하면 심사를 하여 지원한다고 하니, 전국의 수많은 재래시장 중에서 실제 지원을 받는 지자체는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별법을 발의한 오영식의원(우리당)은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격으로 󰡐상인과 건물주와의 협약󰡑을 들고 있다. 그만큼 재래시장이 성공하기 위해선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상인와 건물주와의 이해관계를 푸는 일이라고 한다(조선일보/2004.7.29). ■ 차없는 12시간의 소망 지금까지의 중앙로 차없는 거리 제안에 대한 일부 상인들의 거부감은 하루 종일 도로를 폐쇄하고 차량통행을 막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통행을 못하게 하면, 고객은 어디에 주차를 하고, 물건은 어떻게 나를 것인가에 대한 거부감이 컸었다. 중앙로 차없는 거리는 하루 24시간중 12시간은 차량을 통행하게 하여 상점의 편의를 고려하고, 나머지 12시간은 차량의 통행을 차단하여 자동차의 불안이나 도로시설물 등의 장애로부터 시민들이 편안하게 걷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12시간)는 차량 통행을 막고, 밤 11시부터 오전 11시까지(12시간)는 차량의 통행이나 주차를 할 수 있게 하여, 상점의 물품 반출입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만 차없는 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은 정해진 시간이외에는 이동하여야 한다는 단서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일련의 규칙은 시민과 시민, 시민과 상인회간의 상호 협약에 의해서 조정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차량통행을 12시간에서 편의상 14시간 등으로 늘리는 방법 등이다. 모두가 정한 규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지키는 질서 또한 중요하다. 모두가 정한 질서가 깨진다면 차없는 중앙로는 유지될 수 없다. 노점상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중앙로는 남부시장에서 문화극장까지 1.2km정도(일부 인동과 평원동 구간 포함)이다. 이중에서 차없는 거리로 만들기에 가장 이상적인 구간은 KBS에서 지하상가 사이의 남북축 구간으로, 약 675m정도이다. 또한 이 남북축 구간과 교차되는 강원감영↔풍물시장, 원주기독병원↔중앙농수산물시장의 동서축에 보행자전용도로를 만들어 중앙로의 접근성을 좋게 하여, 역사와 풍물, 쇼핑과 문화가 어우러지도록 하고, 보행자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교차되는 지점에 소규모광장, 공연장, 휴식공간을 마련하여 차없는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앙로 차없는 거리 양쪽 구간, 남부시장↔KBS의 남쪽 구간(240m)과 지하상가↔문화극장의 북쪽 구간(320m)은 항시 노상주차와 통행은 가능하도록 하되, 다만 보도와 차도의 단차를 없애고 경계 볼라드를 설치하여 시민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차없는 거리와 보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원주 도심부와 재래시장, 중앙로의 차없는 거리 제안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짚고, 이를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앞서 본 시민의 생각들은 도심에서 걷고, 머무르고, 생활한 오랫동안의 경험의 축척에서 나온 결과였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도시에 꼭 필요한 것이 어떤 요소들인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 관심만 가졌더라도, (생략) 그 도시의 여기 저기를 거닐어 보면서 자신이 속해있는 도시를 제대로 알려고 하는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를 가졌더라도…󰡓라는 피에로 쌍소의 소박한 주문을 통하여 도시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방향을 읽을 수 있을 것같다. 도심에서 일회성 퍼포먼스도 중요하지만 편안함과 즐거움이 일상생활에서 지속되기를 시민들은 간절히 소망(所望)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