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 1인시위를 시작하며(박그림)

2009년 6월 26일 | 공지사항

▲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가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케이블카 반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벗이여 – 대청봉 1인시위를 시작하며 – 노을이 붉게 물든 저녁 대청봉에 서서 오래도록 찬바람을 맞았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속에 묻혀가는 설악산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바람 속에 섞여 생명들의 소리 가늘게 들립니다. 우리들의 삶의 뿌리가 닿아 있는 우뚝한 땅 설악산어머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거리며 뜨거움이 치밀어 오르는 까닭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설악산어머니의 아물지 않는 상처 위에 또 케이블카를 세우겠다는 우리들의 파렴치한 모습 때문입니다. 설악산어머니를 타고 오르며 스스로의 욕심만 채웠을 뿐 어머니의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았고 아픔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병들어 누운 어머니의 빈 젓을 빨아대며 칭얼거리는 철부지들에게 상처를 감추고 때마다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달래 주었던 설악산어머니가 어둠 속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이며, 국립공원이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인 설악산에 환경보존을 빌미로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우리들의 앞날이 두렵습니다. 정상부인 대청봉은 어떤 시설도 할 수 없는 자연보존지역이며 설악산의 상징이고 1500m 가 넘는 아고산 지역이여서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아주 어려운 지역입니다. 해마다 20만 명쯤이 대청봉에 올라 많은 상처를 남겼고 10여 년 전에 복원공사를 마쳤으나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남아 있는 대청봉에 케이블카를 타고 40만 명이 더 올라가 한해 60여 만 명이 북적거리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길을 따라 쏟아져 내려갈 때 설악산어머니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에 앞장서고 있는 데가 어처구니없게도 국립공원의 자연을 보존하고 관리해야할 환경부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매우 힘듭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넓이라야 국토면적의 4.93%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땅덩이 가운데 자연생태와 역사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핵심지역을 지정한 곳이 국립공원인 것이지요. 꼭 지켜져야 할 곳이라는 이야기지만 개정될 자연공원법 시행령 안에 들어있는 자연보존지구내 케이블카 허용기준이 2km에서 5km로 늘어나면서 설악산 오색-대청 4.73km 구간에 계획되고 있는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공원법을 바꾸어서까지 꼭 케이블카를 대청봉에 놓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환경부가 잊고 있는 것은 설악산은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설악산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가야할 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뿌리가 닿아 있는 산이고 모든 사람들의 산이며 일부 지자체의 산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환경을 보호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돈벌이를 위해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일입니다. 돈벌이가 된다면 자연도 도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은 국립공원조차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었고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는 위정자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어버이날 설악산어머니의 상처를 더듬고 아픔을 달래드리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오체투지로 올랐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도록 어머니의 상처에 이마를 대며 자벌레가 되어 올랐습니다. 훅하며 숨이 땅에 닿을 때마다 상처에서 아픔이 온몸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요! 어머니를 위해서 몸이 부서지도록 애쓰겠습니다! 돌깔기가 된 산길을 오르고, 목재데크를 오르고, 철계단을 올랐습니다. 대청봉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가라앉고 가슴 속에 맺혔던 수많은 생각들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오직 설악산어머니와 내가 부둥켜안고 누워 있었을 뿐입니다. 해는 기울고 하늘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온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졌으나 위로를 드리려 오른 산길에서 위로를 받았고 아픔을 나누려 더듬었던 상처를 통해 내 삶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던 때였습니다. 벗이여! 설악산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세워진다면 우리들 모두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잃을 것입니다. 국립공원으로서의 가치는 물론이려니와 정상으로서의 존엄성이나 외경심을 잃게 될 것이며 야생동물들의 삶은 뿌리 채 뽑혀 어쩌다 눈에 띄던 짐승들마저 사라지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죽은 산으로 바뀔 것입니다. 산풀꽃을 비롯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삶터이며 더불어 살아가야할 산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직 돈벌이 대상으로서 국립공원이 아니라 유원지처럼 되어버린 설악산만 남을 것입니다. 다시 설악산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 대청봉에 오르는 이들에게 설악산어머니가 맞게 될 아픔을 나누려 합니다. 많은 이들이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머리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케이블카를 놓을 수 없도록 막아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가장 사랑하는 산이 설악산이라고 여기면서 사랑하는 산의 아름다움이 사라질 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들은 방관자로 남아 있을 것입니까? 글 :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